폰테크 안보리 ‘가자 평화구상’ 채택…“트럼프 외교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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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는 이날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15개 이사국 중 비상임이사국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찬성으로 가자지구 평화구상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은 기권했다. 안보리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미·중·러·영국·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유엔 역사상 가장 큰 승인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전 세계의 더 큰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안보리 결의 채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요한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가자지구 전쟁 2년 동안 미국은 전쟁범죄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이스라엘을 지지해 유엔에서 고립됐다. 하지만 이번 결의를 통해 가자지구 평화구상은 국제법적 지위를 얻게 됐다.
안보리 결의는 전후 과도기 가자지구 통치를 감독할 평화위원회 설립, 가자지구 안보를 담당할 국제안정화군(ISF) 파병 등 가자 평화구상의 핵심 내용을 승인했다. 또 향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를 임시 통치할 팔레스타인 기술관료위원회를 감독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 등 피식민 지배 국가에서 이뤄진 신탁통치 기구와 유사한 형태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장을 맡아 가자지구 통치와 재건 등 사실상 모든 측면을 통제한다. 안보리의 평화위원회 승인은 2027년 말 만료된다.
안보리 결의는 또 ISF에 국경 감독, 안보 임무를 부여했다. 특히 ‘비국가 무장 그룹의 영구적 무장해제’를 임무로 명시해 ISF가 하마스 등 저항세력의 무장해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동안 ISF에 병력 파견을 검토해온 아랍·이슬람 국가들은 파병을 위해서 유엔의 승인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결의에는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포함됐다. 결의는 요르단강 서안 일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개혁이 완수된 후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국가 지위에 도달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길이 마침내 마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아랍 국가와 팔레스타인이 미국에 팔레스타인 자결권에 대한 문구를 강화하라고 압력을 넣어 2주간 협상 끝에 나왔다.
안보리 결의 통과로 가자 평화구상이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지만 향후 실행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장 하마스는 안보리 결의가 “팔레스타인인의 정치적, 인도적 요구와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ISF가 하마스 등 저항세력의 무장해제 권한을 부여받은 것에 대해 “ISF의 중립성을 박탈하고 분쟁 당사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 전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휴전 발효 이후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고 있으며, 서안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정착민 폭력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연말이면 하나둘 등장하는 게 있다. 결산 리스트다. 미디어가 많아진 만큼 리스트는 1년 내내 여러 주제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그중 갑론을박이 특히 격렬한 리스트가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밴드는?”이다. 이 리스트에서 최소 5위 안에 들 자격이 있는 밴드를 떠올려본다.
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이라면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존재였던 만큼 레드 제플린은 대중문화에서 단골 소재로 쓰였다. 1973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대표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음악평론가 지망생이다. 그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에 발탁되어 어떤 밴드의 투어에 참여한다.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온다고 하자 한 멤버가 고함친다. “‘롤링 스톤’이야! 에릭 클랩턴을 무시하고, 레드 제플린을 깐 놈들이라고!” 실제로도 그랬다. ‘롤링 스톤’의 1969년 리뷰를 보면 레드 제플린에 대해 “너무 지루하고, 과하게 반복적이다. 들을 가치가 없다”고 쓰여 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음반이 별 5개 만점이다.
이게 내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이다. 어떤 평가에든 ‘절대’라는 건 없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한다. 문화적인 잣대 역시 변한다. 그때는 틀린 것이 지금은 맞을 수 있다. 비평도 마찬가지다. 비평에 작용하는 요소는 다양하고, 가변적이다. 우리는 예술가의 이름값에 그저 취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나 기분 역시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 즉 멸균 상태의 음악 듣기란, 더 나아가 순수한 형태의 감각이란 없다. 우리는 끊임없는 영향 속에서 무언가를 즐기고, 평가를 내린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의 절대적 객관이 아니다. 수많은 상대적 주관의 공존이다. 그것이 대중문화라면 더욱 그렇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1988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작가 최윤이 쓴 작품이다. 작품의 출판에 얽힌 사연을 회고한 에세이에서 작가는 이 소설이 “내가 겪지 못한 광주항쟁에 바친 내 나름의 헌사”이며, “헌시(獻詩)를 쓰는 마음으로” 썼다고 고백한다. 고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불행을 외국어로 쓰인 신문 기사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작가는 자신이 “원시적인 몸 앓이”를 하던 “고립된 젊은이”였다고 기억한다.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역사의 폭력을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느린 몸의 리듬과 감각으로 써 내려간 것이 이 작품이다. 작가는 언어적 재현을 거부하는 역사적 사건을 언어화하려 하면서, 그 사건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은밀한 감염의 경로”를 보여주고자 했다. 감염은 의식적 자각이나 각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공유다. 말할 수 없는 사건을 말하려면 ‘다르게 말하는 법’을 찾아야 하고, 그 사건이 사람들에게 전달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려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해야 한다. 이 두 작업의 동시적 수행이 이 작품을 5·18에 대한 문학적 재현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 요소다.
이를테면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역사적 사실로서 5·18을 증언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빗겨나 있다. 광주의 충격적인 역사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명령을 따르지도 않고, 항쟁의 주체를 올바르게 재현해야 한다는 과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과 같은 해 발표된 홍희담의 <깃발>은 군인들의 학살을 목격한 민중이 무장투쟁을 선택하고 시민군의 일원으로 도청에 남아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와 이들의 싸움을 기록하고 역사적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죽음으로써 항쟁의 주체가 됐던 이들이나 살아남아 항쟁을 계속하는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광주항쟁에 대한 민중 여성의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민중 여성을 항쟁의 주체로 서술하는 이런 전형적 관점과는 다른 지점에서 광주의 경험에 접근한다.
작품은 프롤로그와 전체 10개의 절로 이뤄졌는데, 절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은 광주의 거리에서 엄마가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는 소녀의 1인칭 독백,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인 그에게 방어적 폭력으로 맞섰다가 결국 그의 어두운 심연을 이해해 가는 남자의 서술, 실종된 소녀의 행적을 좇아가는 오빠의 친구들인 “우리”의 서술, 그리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내레이터의 서술(프롤로그)이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작품은 이 여러 화자가 번갈아 부르는 “돌림노래”다. 이 돌림노래는 계속되는 변주곡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이 돌림노래의 주제 파트를 이루는 소녀의 내면은 이미 정상적 언어로는 접근할 수 없는 광기의 세계로 들어갔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적 경험에 더해 자신이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에 검은 장막을 드리웠다. 심리적 장벽 속에 갇힌 실성한 여성이 항쟁의 역사적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소설은 소녀의 내면에 다가가고 그의 고통에 감염되는 남성들의 목소리에 상당한 서술의 몫을 배분함으로써 광주의 경험을 우회적으로 그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역사의 폭력에 의해 훼손된 소녀를 찾고 그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이루는 남성들의 이야기이자, 순결한 소녀의 훼손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강화하는 여성 수난 서사의 계보 안에 있는 작품으로 읽힐 법하다. 특히 그가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죽은 오빠를 찾아 헤맨다는 발상이나, 아버지를 대신하는 듯한 오빠의 친구들에게 가장 객관적인 서술 문체를 부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이 소설의 여성주의적 함의를 제한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 소녀는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지만, 그 폭력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피학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수동적 존재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연유로 소녀가 사회적 행위성을 갖지 못한 “순수한 실체”이자 “자연적 존재”로 미학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내려지기도 한다. 실제로 소녀의 독백이나 행동이 해독 불가능한 것으로 읽히면서, 광주의 참상은 재현의 수위를 넘어서는 어떤 절대 사건으로 신비화되기도 했다.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려는 역설적 시도를 감행하겠다는 작가의 발언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소환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소녀에게 남성적 서술을 통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역사의 폭력에 희생된 수동적 여성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남성에 의해 대리 재현돼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소녀는 희생의 자리에서 이탈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씨를 무력화하고 그를 변화시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행사한다. 그가 성폭력에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나 자기 신체를 자해했던 것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처벌하는 행동이다. “내 끔찍한 범죄의 자리, 나 혼자 살아남으려고 나는 엄마의 손, 팔, 흰 눈자위를 내 발로 짓이겼어. 엄마가 눈자위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어.” 그는 죽어가는 엄마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 그 고통을 견디는 윤리적 행동을 감행한다. 물론 이런 윤리적 주체의 형상은 민중문학이 그려왔던 주체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엄마가 죽어가던 트라우마적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소녀가 대면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였다. 이 대면이 무서워 그는 자신의 눈에 검은 장막을 두르고 자신을 광기 속에 유폐해왔다. 소설의 절정은 소녀가 검은 장막을 걷어내고 엄마가 총에 맞아 죽던 순간을 똑바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래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순간을 바라보아야 해. 엄마 얼굴이 뒤로 꺾였고 구멍이 나버린 엄마가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입을 벌렸을 때 엄마의 눈은 이미 흰자위만 보였어. 나는 …… 그래. 자 천천히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되새겨봐. 내 뼈가 고통으로 녹을 정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녀가 오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은 오빠에게 자신이 엄마에게 범한 범죄행위를 고백하기 위해서다. 엄마의 죽음과 그 죽음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말해야 한다는 의무가 그를 오빠를 찾아 나서게 만든 심리적 동인이다. 9절의 독백에서 소녀는 이제 자신이 오랫동안 회피해왔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말하는 데 성공한다. “자 이제는 무섭지 않아. 검은 휘장을 뜯어내고 내 흉악한 얼굴을 달처럼 무덤 위에 떠올리는 거야.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내일 다시 곰팡이 난 내 몸을 햇볕에 말려야지.” 마침내 이 발화를 통해 소녀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주체의 자리에 올라선다.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광주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소녀가 자신의 입으로 그날의 기억을 말하게 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스스로 떠맡게 만든 작품이다. 이 소녀의 주체적 형상이 없었다면 이 작품의 여성주의적 의미는 크게 반감됐을 것이다. 광주의 비극을 말하는 주체는 그의 행방을 쫓거나 그에게 감염된 남성 존재들에 앞서 자신의 얼굴에서 검은 장막을 스스로 걷어내는 여성 자신이다. 이 소녀의 형상을 198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우리 앞에서 그려 보였다는 점에서 최윤은 한국 여성문학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 이명호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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